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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白磁扁甁 硏究
A study on the white porcelain flask of Joseon Dynasty

朝鮮時代 白磁扁甁 硏究

白磁扁甁은 경기도 광주 官窯에서 새로운 제작기법으로 조선시대에 처음 출현한 관요백자의 특수기명 중 하나이다. 백자편병의 독특한 조형은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왕실의 전통성과 보수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관요백자의 양상을 보여준다. 관요백자의 위상과 특징이 반영된 백자편병은 중요한 기종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현존하는 유물과 문헌기록의 부족으로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에 출현한 백자편병의 개념과 조형적 연원, 유적 출토 현황을 통해 제작과 사용을 포함한 백자편병의 전체적인 양상, 제작배경, 시기별 양식변천 등을 면밀히 검토해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백자편병이 가지는 관요백자로서의 위상과 성격을 고찰해 백자편병에 대한 종합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우선 백자편병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편병의 명칭과 용어, 용례에 대해 고찰하였다. 먼저 상대적으로 자료가 풍부한 중국의 문헌기록을 통해 명칭과 용례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조선시대의 문헌기록을 역으로 살펴보았다. 중국 전국시대부터 제작이 시작된 편병은 명·청대까지 유행이 지속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제작이 이뤄졌다. 전통적인 도기편병까지 소급할 수 있으나 본 논문의 연구주제인 백자편병은 국내의 도기제작기술과는 차별화된 제작기법과 조형성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조선전기부터 시작되어 조선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보여진다.

편병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용어는 榼, , 钾, 柙, 酒鼈(子), 扁提, 扁壺, 扁甁과 그 외 태극준, 자라병이 확인된다. 대체로 편평한 동체부에 장식고리가 부착된 굽이 있는 기형적 특징을 지닌 기물을 지칭하였다. 편병은 문헌기록과 명문, 회화, 출토품 등을 통해 盛酒(水)器, 儀禮容器(祭具), 食用器, 副葬品, 花甁 등의 용례가 파악되었으며, 비교적 조형이 유사한 기물에 대해서는 시대별로 지칭하는 용어와 용례가 다양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조선시대에 등장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기 편병은 고려의 제작전통과 중국의 제자영향이 공존하는 과도기적인 도자사의 흐름 속에서 분청사기와 백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재질과 형태로 번안되어 만들어졌다. 분청사기와 백자로 처음 편병이라는 기종이 제작될 당시에는 동일한 제작기법으로 중국 전국시대 청동편병을 모방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류적 친연성으로 인해 분청사기는 전통적 도기제작기술로 흡수되면서 편병에서 병의 형태로 제작되다가 소멸되었다. 반면, 백자편병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동일한 제작기법과 금속기를 철저히 모방한 형태로 官窯에서 지속적인 제작이 이뤄졌음이 확인되었다.

백자편병은 현재 편년유물이 거의 없고, 생산지와 소비지 유적에서 확인되는 출토품의 수량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전세품과 함께 분석해보면 백자편병의 형태와 장식이 시대별로 다양하였음이 파악된다. 백자편병은 극히 일부 지방에서 제작된 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기도 광주 官窯에서 제한적으로 제작된 양상을 보인다. 최근 활성화된 경기도 광주 官窯의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백자편병을 살펴보면,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에 백자편병이 집중적으로 처음 제작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생산된 것이 확인된다. 특히 백자편병의 생산지와 제작 양상을 고찰해본 결과, 陶器所 · 磁器所 체제 당시 분청사기와 상감백자편병이 출현하다가 官窯가 설치되면서 경기도 광주일대에서 비로소 본격적인 백자편병이 새로운 제작기법과 정형화된 형태로 지속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제작 양상이 파악되었다. 그리고 조선왕실에서 관리·감독한 官窯에서 백자편병의 조형이 완성되고, 높은 질적 수준을 유지하며 한정된 수량으로만 제작된 것을 확인하였다. 이에 관요백자의 특수기명 중 하나로 백자편병의 기명적 위상과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실 백자의 전통성과 변화에 대한 보수성을 상징하는 백자편병이 가진 상징성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소량으로 출토되었지만 분묘·관청·기타유적 등 다양한 성격의 조선시대 소비지 유적에서의 출토양상을 통해 일반기명과 明器로서의 용도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유적출토품과 전세품을 대상으로 유형 및 장식기법과 문양을 분석하여 조형적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백자편병의 편평한 동체부의 특징적인 형태를 중심으로 Ⅰ·Ⅱ·Ⅲ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Ⅰ유형은 조선시대 전시기 동안 정형화된 형태로 제작되었다. 무문, 철화, 청화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백자편병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Ⅱ·Ⅲ유형은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형태로, 당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세부적인 조형에서 변화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시문은 청화, 음각·양각기법이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분류된 조선시대 백자편병의 기형은 조형적 정형성 및 보수성을 반영한다. 더불어 시기별 제작양상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형적 연원이 중국의 청동편병에 있으나 이를 재해석하고 주체적으로 모방한 것임이 파악되었다.

앞서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백자편병은 고려와 차별화된 조선의 유교적 정치이념에 따른 새로운 조선왕실의 상징적인 기물로서 《禮記》에 충실한 관요백자로서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유교 국가를 지향하는 조선의 정치적 이념에 따른 예제 정비와 고제연구를 통해 중국 전국시대 청동편병을 모방한 백자편병이 官窯에서 조선왕실을 비롯한 특정한 수요층을 대상으로 금속기를 모본으로 높은 질적 수준을 유지하면서 한정된 수량만으로 백자편병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작배경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등장한 백자편병은 Ⅰ기(15세기 중반 - 16세기)에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禮記》에 충실한 새로운 의례기물로서의 官窯에서 백자편병이 본격적으로 출현하였고, Ⅱ기(17세기)에는 《禮記》에 충실하여 장식이 없는 무문백자편병이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당시《朱子家禮》의 보급에 따른 喪葬儀禮의 변화로 새로운 墓制인 灰隔墓가 등장하면서 백자편병이 의례기명으로서의 성격이 변질된 시기로 보았다. 이에 無文의 동체부에 문양이 시문되면서 기물의 성격이 변하는 전환기로 보았다. Ⅲ기(18-19세기)에는 백자편병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조형들이 등장하는 시기로 분원리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북학사상이 대두되고, 乾隆年間에 朝·淸의 우호적인 외교관계로 대외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래자기들이 다양하게 유입되었다. 더불어 사대부와 부호계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치풍조의 문화가 만연해지면서 일상기명 또는 완상용 기명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조선후기 새로운 백자편병의 조형이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시대 백자편병은 유교를 바탕으로 국가를 개창한 조선이 고려와 차별화된 상징적인 의례기물을 갖춰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기물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금속제 청동편병에 조형적 연원을 두고 있지만 금속원료의 수급이 원할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자기제로 번안되어 생산이 이뤄졌다. 그리고 관요에서 최상급의 양질백자로 제작되어 높은 기명적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본 논문은 조선의 정치적 이념의 산물로 등장한 관요산 백자편병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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